현대미술과 미술시장/생활 밀착형 수집의 기술

작가와의 소통 에티켓 - DM/오프닝에서의 매너

o-happy-life 2025. 9. 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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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오프닝 시작 10분 전. 좁은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려 조용한 흰 방으로 흘러든다. 벽 시계가 6시를 살짝 넘긴 순간, 작가가 구석에서 누군가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나는 먼저 방 한가운데 서서 전면-45도-라벨을 천천히 읽는다. 마음이 움직이는 작품 앞에서 30초 숨을 고르고, 오늘의 목표를 다시 떠올린다. “좋아한다는 마음을 예의 바른 문장으로.”

 

오프닝은 구매 상담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공개된 축하 자리다. 인파가 늘자 갤러리스트가 다가와 미소로 말을 건넨다. “어떤 작업이 마음에 남으세요?” 나는 벽을 가리키며 짧게 이유를 말한다. “여백이 울림이 있네요. 이 시리즈의 표준 크기와 문헌 신호가 궁금해요.” 대화의 첫 단추가 예의 바르게 잠기는 순간, 방의 공기가 편안해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인스타그램에 작가 계정을 찾아 본다. 팔로우 버튼을 누르고 DM 창을 열었다가, 곧 닫는다. “지금은 오프닝 밤. 축하 DM은 내일 오전에.” 즉흥적인 감탄을 하룻밤 경유시키면 문장이 더 또렷해진다.

작가와의 소통 에티켓

다음 날 아침, 짧은 메시지를 보낸다. “어제 전시 축하드립니다. ○○작품의 표면과 리듬이 오래 남아 DM 드립니다. 자세한 문의는 갤러리 통해 이어가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감탄은 작가에게, 조건과 계약은 갤러리에게. 역할을 분리하는 이 한 줄이, 앞으로의 모든 관계를 편안하게 한다.

작가와 소통의 핵심 : 역할, 문서, 속도

작가와의 소통은 세 가지 축을 잊지 않을 때 가장 매끄럽다. 역할, 문서, 속도.
 
역할(삼각형의 질서): 1차 시장에서 가격 제시·계약·배송·세금은 보통 갤러리의 역할이다. 작가에게 직접 가격·할인·예약을 묻는 DM은 관계를 어색하게 만든다. 작가에겐 감상·제작 질문·자료 요청을, 갤러리에겐 가격·총액·일정을 묻는다. 스튜디오 방문도 갤러리와 조율하는 편이 안전하다. 예외적으로 작가가 셀프런(자체 판매)이라면, DM 첫 줄에 “직접 판매 여부”를 정중히 확인한다.
 
문서(증거의 언어): 좋아함을 거래로 옮길 때 필요한 건 감정이 아니라 문서다. 인보이스·COA·에디션 표·설치 매뉴얼·보존 권고·온홀드 규칙. 대화는 항상 문서로 끝낸다. 사진·판화는 프레이밍 사양(UV 아크릴·아카이벌 매트), 영상·설치는 가정용 설치 버전/대체 장비/마이그레이션 유무를 문장으로 남긴다.
 
속도(하룻밤·총액 언어): 오프닝에서 바로 결제까지 달리는 속도는 실패 확률을 높인다. 오늘 감탄은 오늘 기록하고 내일 계산한다. 계산은 늘 작품가 X + 프레임/장비 + 운송/보험 + (세금·서류) = 총액 Y의 두 줄. 이 총액이 대화의 첫 줄이 되면, 상대도 당신을 훈련된 수요자로 대한다.
 
이 세 축을 지키면, 예의와 효율이 동시에 선다. 작가에게는 존중이, 갤러리에게는 신뢰가, 나에게는 오래 가는 만족이 남는다.
 

작가와 소통 실전 

 
오프닝 날, 문을 열고 들어가면 먼저 축하를 건넨다. “전시 축하드립니다. 벽의 호흡이 정말 좋네요.” 이 한 문장은 누구의 방해도 아니다. 작가와 길게 붙잡아 두지 않고, 자리를 비켜 주는 것도 매너다. 방을 한 바퀴 돈 뒤, 담당자에게 네 문장만 또렷하게 묻는다.

  1. “이 시리즈의 표준 크기/사양은 어디인가요?”
  2. “최근 기관·도록 본문과 연결된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3. “(사진·판화라면) 사이즈별 에디션 총수와 A.P./P.P.는요?”
  4. 프레임/운송 포함 총액 견적과 온홀드 규칙(시간/연장)은 어떻게 되나요?”

    대화가 길어지면 “오늘은 축하 자리이니, 상세는 메일로 이어가겠습니다”라고 마무리한다. 명함이나 인스타 계정을 교환하되, 셀피·작가 사진 태그는 허락을 받고 올린다(특히 설치 중/정리 중엔 금물). 작품 촬영은 라벨만, 사람 얼굴은 피한다. 크레딧은 작가명·작품명·연도·재료·갤러리 태그까지 적어, 향후에도 정보가 스스로 걸어 다니게 한다.

집으로 돌아오면 하룻밤을 둔다. 다음 날 오전, DM은 짧고 명확하게—세 문장 규칙.

  • ① 감상: “어제 ○○작품의 표면과 리듬이 오래 남았습니다.”
  • ② 방향: “구매·계약 관련 문의는 갤러리 통해 이어가겠습니다.”
  • ③ 요청: “작업 노트/자료집/기사 링크를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작가는 당신이 선을 지킬 줄 안다는 사실에서 안도한다. 자료 링크를 받았다면 감사를 잊지 않는다. “덕분에 더 잘 보게 되었습니다.”

며칠 뒤, 정말 들이고 싶은 마음이 굳어지면 메일로 결정형 문의를 보낸다.

“안녕하세요. ○○갤러리 △△님, 지난 오프닝에서 본 □□작가 2024년 ○○ 시리즈 80×60cm에 관해 문의드립니다. ① 가격과 포함 항목(프레임/운송/보험) ② 온홀드 가능 시간COA·인보이스 발행 주체 ④ (사진/판화 시) 에디션 구조를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을 받으면 워치리스트 옆에 작품가→총액 두 줄을 적고, 워크어웨이 넘버(총액 상한)를 스스로에게 보낸다. 그 숫자가 생기면, 과열은 자연히 식는다.
 
스튜디오 방문을 제안받았을 때의 매너는 다르다. 방문 시간은 45–60분, 인원은 1–2명, 선물은 작은 책/꽃이면 충분하다. 질문은 작품의 규칙·제약·자료에 집중한다. “이 시리즈의 크기·간격은 어떻게 결정되나요?”, “재료/공정의 제약은 무엇인가요?”, “참고한 문헌·자료가 있을까요?”
 
가격·할인·우회 구매는 금물. 사진 촬영은 허락 받은 후 일부만, 작업 중인 미공개는 업로드하지 않는다. 방문을 마친 뒤엔 갤러리에게 “잘 다녀왔다”는 한 줄과 함께 감사 메일을 보낸다. 생태계를 우회하지 않는 이 한 줄이 다음 기회를 만든다.
 
만약 재고가 없거나 대기자 명단이라면, 실망을 감추려 애쓰지 말고 문장으로 방향을 바꾼다. “다음 드롭/프리뷰 링크를 받을 수 있을까요? 중형 표준 사양이 아니어도 소형 드로잉/에디션으로 먼저 배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작은 응원의 길을 선택한다.
 
아티스트 북·리소그래프·전시 도록을 구입해 읽고, 리뷰나 인터뷰를 스크랩해 파일명에 교차 표기한다(작가_연도_시리즈_페이지). “지금은 못 산다”는 말 대신 “지금은 공부한다”는 선택이, 언젠가 가장 빠른 길이 된다.
 
끝으로, 하지 말아야 할 문장 몇 가지를 마음에 새긴다.

  • “할인 가능할까요?”(→ 갤러리와 조건·총액 언어로)
  • “지금 사면 제 이름으로 기사/전시 넣어주실 수 있나요?”(→ 기관·문헌은 거래 조건이 아니다)
  • “예전 작품 중 남은 게 있나요?”(→ 작가·갤러리에 과거 재고를 압박하는 질문은 피한다)
  • “DM으로 바로 예약할게요.”(→ 온홀드·결제는 공식 채널로)
    예의는 과장된 말이 아니라 질서의 존중이다. 질서를 지키면 말수가 적어도 관계는 길어진다.

주요 용어 및 추천 미션

주요 용어

  • 프라이머리(Primary) vs 다이렉트(Direct): 프라이머리는 갤러리 경유 1차 판매가 원칙. 다이렉트는 작가가 자체 판매하는 경우. 먼저 판매 채널을 확인하고 역할에 맞게 문의한다.
  • 온 홀드(On hold): 조건부 예약. 만료 시각·연장 규칙·보증금 유무를 문서로 확인한다.

추천 미션

  • 오프닝에선 “축하-짧은 감상-자리 비켜주기” 순서로, 상세 조건은 메일로 옮기세요.
  • DM은 세 문장 규칙(감상/역할 분리/자료 요청)으로 짧게. 가격·할인은 갤러리에 총액 언어로.
  • 스튜디오 방문은 갤러리와 조율하고, 질문을 규칙·제약·자료로 준비하세요. 사진·업로드는 반드시 허락 후.

다음 회차 예고: “세금, 운송·포장 기초”. 거래 시점의 세금 항목, 국내·해외 운송의 차이, UV 아크릴/아카이벌 프레이밍과 함께 가야 하는 포장·보험의 기본기를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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