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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즈 서울 19

마이애미, 홍콩의 페어 - 온도·언어·유통이 바꾸는 기준선

12월 초, 마이애미 비치 컨벤션센터 앞에 서면 바람부터 다르다. 햇빛은 강하고 습도는 높다. 입구에서 손목밴드를 채우는 사이, 건너편에선 바다 쪽 텐트가 분주하다. 메인 페어 안쪽 “블루칩 벽”들이 탄탄하게 시장의 중심을 정렬하는 동안, 해변과 도심 곳곳의 위성 페어와 팝업이 동시다발로 열리고 닫힌다. 밤이 되면 미술관 컬렉션 투어, 브랜드 협업 파티, 프라이빗 하우스 쇼가 뒤섞인다. 마이애미의 특성은 단순히 ‘파티’가 아니라, 메인-위성-브랜드-사적 컬렉션이 하나의 주(週) 안에서 촘촘히 결박되는 혼성 생태계에 있다. 이 압력은 젊은 작가의 신작·대형 설치·컬래버레이션을 즉시성의 언어로 밀어 올리고, 사진·판화·오브제 같은 휴대·설치가 쉬운 포맷을 생활로 빠르게 옮긴다. 미국 내 운송·보험·세일즈택스..

카테고리 없음 2025.09.09

런던, 뉴욕 - 도시가 만드는 기준선과 속도

비 내린 아침, 런던 메이페어의 조용한 골목을 걷다가 유리창 너머로 검은 장갑을 낀 설치 팀이 마지막 수평을 맞추는 모습을 본다. 바깥은 축축하지만, 안은 건조하고 단단하다. 벽 텍스트에는 큐레이터의 문장이 다섯 줄 넘게 이어지고, 쇼카드는 종이 질감부터 진지하다. 런던의 전시는 문헌과 제도가 의사결정을 이끈다. 테이트·서펜타인·바비칸 같은 기관의 어휘가 상업 갤러리의 벽에 자연스럽게 박히고, 프리즈 런던/프리즈 마스터스 기간엔 메이페어-세인트제임스-피츠로비아-버먼지에 이르는 클러스터가 하나의 거대한 각주처럼 작동한다. 바로 옆 블록에서는 소더비·크리스티·필립스의 미리 보기 동선이 갤러리 언어와 맞물린다. 런던이 다른 도시와 다른 점은, 전시장에서 카탈로그까지 이어지는 텍스트의 인장이 거래를 미묘하게 이..

카테고리 없음 2025.09.08

보험, 대여, 기증 입문 - 지키고, 내어주고, 함께 나누는 길

목요일 저녁, 서랍에서 오래된 서류철을 꺼낸다. 구입 인보이스, COA, 프레임 견적서, 그리고 한 통의 메일. “○○미술관입니다. 귀하의 △△작품을 오는 가을 기획전에 대여받고자 합니다.” 가슴이 먼저 뛴다. 하지만 다음 줄이 곧 마음을 가라앉힌다. “시설 보고서 첨부, 보험은 기관 Wall-to-wall 제공, 포장·운송은 당사 지정.”나는 식탁 위에 한 장짜리 표를 만든다. 왼쪽엔 보험/대여/기증, 오른쪽엔 문서/책임/비용. 그리고 맨 위에 두 줄을 쓴다. “총액은 숫자, 위험은 문장.” 작품을 사랑하는 길은 더 갖는 일이 아니라, 잘 지키고 잘 내어주고 때로는 잘 건네는 일까지 포함된다. 오늘은 세 가지 길의 입구를 생활 언어로 열어 본다. 가격표를 넘어서는 마음의 문제 같지만, 결국은 서류와 문..

카테고리 없음 2025.09.05

세금, 운송·포장 기초 - 예산을 안정적으로, 작품을 안전하게

비 오는 수요일 저녁, 갤러리에서 받은 인보이스를 식탁 위에 펼쳐 둔다. 작품가 한 줄만 덜렁 있는 줄 알았는데, 작은 글씨가 줄줄이 달려 있다. “포장/운송 별도, 보험 선택, 통관 수수료 구매자 부담.” 옆 칸에는 ‘문전(Door-to-door)’과 ‘공항 인도’ 두 가지 옵션이 적혀 있다. 나는 노트에 한 줄을 크게 쓴다. 작품가 X + 포장/프레이밍 + 운송 + 보험 + (세금·통관 수수료) = 총액 Y. 이 두 줄이 켜지는 순간, 막연했던 설렘이 현실의 문장으로 바뀐다. 보내는 도시는 습하고, 오는 도시는 건조하다. 작품은 종이, 프레임은 유리, 박스 사양은 미정. 잘못 고르면 운송비가 작품가의 절반까지 치솟을 수도 있다.반대로 표준을 정확히 고르면, 우리 집 벽까지의 여정은 놀라울 만큼 매끈해..

카테고리 없음 2025.09.03

작가와의 소통 에티켓 - DM/오프닝에서의 매너

금요일 저녁, 오프닝 시작 10분 전. 좁은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려 조용한 흰 방으로 흘러든다. 벽 시계가 6시를 살짝 넘긴 순간, 작가가 구석에서 누군가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나는 먼저 방 한가운데 서서 전면-45도-라벨을 천천히 읽는다. 마음이 움직이는 작품 앞에서 30초 숨을 고르고, 오늘의 목표를 다시 떠올린다. “좋아한다는 마음을 예의 바른 문장으로.” 오프닝은 구매 상담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공개된 축하 자리다. 인파가 늘자 갤러리스트가 다가와 미소로 말을 건넨다. “어떤 작업이 마음에 남으세요?” 나는 벽을 가리키며 짧게 이유를 말한다. “여백이 울림이 있네요. 이 시리즈의 표준 크기와 문헌 신호가 궁금해요.” 대화의 첫 단추가 예의 바르게 잠기는 순간, 방의 공기..

카테고리 없음 2025.09.02

연간 예산, 속도 조절 - 예산은 분기 단위로, 결정은 하룻밤 단위로

새해 첫 주 일요일, 식탁 위에 빈 달력과 얇은 파일을 펼쳐 둔다. 지난해의 영수증과 COA, 프레임 견적서가 차분히 쌓여 있다. 나는 먼저 숫자를 적지 않는다. 대신 한 문장을 가운데에 쓴다. “예산은 분기 단위로, 결정은 하룻밤 단위로.” 그 아래에 네 칸을 그린다. 1분기·2분기·3분기·4분기. 각 칸의 구석에 작은 메모를 붙인다. “봄—탐색·소형 구매”, “여름—정리·프레임”, “가을—압축·선택”, “겨울—결산·보존”. 작년의 실수를 떠올린다. 봄의 들뜸에 두 점을 연달아 결제했고, 가을의 과열에 프레임 예산이 밀렸다.올핸 리듬을 바꿔 보기로 한다. 분기마다 한 번, 예산을 조정하고, 모든 결정을 하룻밤을 지나 내리는 방식으로. 이 간단한 리듬만 갖추면, 지갑은 속도를 잃고 판단은 문장을 얻는다...

카테고리 없음 2025.08.31

나의 취향을 한 줄로 - “나는 ○○한 작업을 좋아한다.” 선언문 만들기

일요일 오후, 미술관 로비의 긴 벤치에 앉아 노트를 펼친다. 오늘은 많이 보지 않기로 했다. 대신 하나의 문장을 만들기로 한다. “나는 ○○한 작업을 좋아한다.” 빈칸을 오래 바라본다. 오전에 본 전시를 거꾸로 되감는다. 한 벽을 채운 대형 회화는 좋았지만 마음이 오래 머무르진 않았다. 오히려 복도 끝, 유리 안쪽에 있던 작은 드로잉 앞에서 발이 멈췄다. 종이의 섬유가 사선으로 빛을 먹고, 여백이 선을 부드럽게 감싸던 그 순간. 노트에 첫 단어가 적힌다. “나는 여백이 넉넉하고 선의 호흡이 느린 작업을 좋아한다.” 문장을 더듬더듬 고쳐 본다. “나는 종이의 섬유가 살아 있고 여백이 넉넉한, 작은 드로잉을 좋아한다.” 단정한 문장 하나가 이상할 만큼 마음을 가볍게 만든다. 이 문장만 있으면 오늘 이후의 선..

카테고리 없음 2025.08.30

예산 100만 원으로 한 달 즐기기 - 만족을 극대화하는 법

월초의 첫 토요일, 메모앱 첫 줄에 숫자 하나를 적는다. “이번 달 미술 예산: 1,000,000원.” 카드 명세서와는 별개의, 기쁨을 관리하는 통장 같은 숫자다. 계획은 단순하다. 전시 몇 개를 제대로 보고, 작가 노트를 한두 권 모으고, 소형 작업 하나를 고르고, 남은 돈으로 프레이밍을 깔끔히 마무리한다. 지난 시즌의 실패 - 티켓을 무심코 쌓다가 소형 작품을 놓친 일, 프레임 비용을 간과해 총액이 틀어진 일 - 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오늘은 총액 예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항목을 나누지 않고, 한 달 동안 미술에 쓰는 모든 지출을 한 바스켓에 넣어 사후 배분하는 방식이다.지갑을 열기 전, 벽 앞에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번 달의 목표는 돈을 쓰는 게 아니라, 문장을 남기는 것이다. 왜 이 전시였는..

카테고리 없음 2025.08.29

온라인 뷰잉룸 - 집에서 하는 프리뷰, 문서·영상·가격을 한 화면에 정리하는 법

밤 10시, 거실 등만 낮춰 두고 노트북을 연다. 링크를 클릭하면 로딩 바가 지나가고, 화면 가득한 작품 이미지가 조용히 떠오른다. “View in room” 버튼을 누르자 가상 벽 위로 작품이 걸리고, 커서를 대면 치수와 프레임 두께가 따라온다. 확대 슬라이더를 끝까지 당기면 붓질의 골과 종이 섬유가 살아나고, 옆 탭의 PDF에는 작가 노트와 전시 이력, 에디션 표가 정리되어 있다. 채팅창에 “프레임 포함인가요?”라고 남겼더니 몇 분 뒤 담당자가 “프레임 제외, UV 아크릴 옵션 가능, 운송 별도”라고 답한다. 오프닝 밤의 소란 대신, 한 장의 화면 안에서 선호–증거–총액이 차분히 연결되는 순간이다. 온라인 뷰잉룸은 “가서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아니라, 집중과 비교에 최적화된 환경이다. 화면이 보여 ..

카테고리 없음 2025.08.28

서울 가을 시즌 준비 - 한 달 루틴

9월의 달력이 갑자기 복잡해진다. 휴대폰에 “프리뷰 RSVP 마감”, “기관 야간 개관”, “페어 오프닝” 알림이 줄줄이 뜨고, 지도 앱에는 삼청–한남–성수에 별표가 촘촘히 박힌다. 토요일 아침, 얇은 카디건 주머니에 연필 하나를 꽂고 집을 나선다.오늘의 코스는 세 구간 - 삼청의 기관 전시로 몸을 깨우고, 사간·북촌의 상업 갤러리에서 신작과 가격 계단을 확인한 뒤, 성수 쪽 위성 전시로 마무리하는 3시간짜리 루틴. 전시장은 맑고, 거리는 분주하다. 벽 텍스트를 한 문단만 읽고 작품 앞에 서는 습관이 붙자, 라벨의 “전시/문헌/프로버넌스” 문장도 더 이상 정보의 홍수가 아니다. 오후에는 레지던시 오픈스튜디오에서 작가의 말을, 저녁에는 페어 플랫폼의 뷰잉룸에서 자료를 정리한다. 가을 시즌을 잘 보낸다는 건..

카테고리 없음 202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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