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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터 10

마이애미, 홍콩의 페어 - 온도·언어·유통이 바꾸는 기준선

12월 초, 마이애미 비치 컨벤션센터 앞에 서면 바람부터 다르다. 햇빛은 강하고 습도는 높다. 입구에서 손목밴드를 채우는 사이, 건너편에선 바다 쪽 텐트가 분주하다. 메인 페어 안쪽 “블루칩 벽”들이 탄탄하게 시장의 중심을 정렬하는 동안, 해변과 도심 곳곳의 위성 페어와 팝업이 동시다발로 열리고 닫힌다. 밤이 되면 미술관 컬렉션 투어, 브랜드 협업 파티, 프라이빗 하우스 쇼가 뒤섞인다. 마이애미의 특성은 단순히 ‘파티’가 아니라, 메인-위성-브랜드-사적 컬렉션이 하나의 주(週) 안에서 촘촘히 결박되는 혼성 생태계에 있다. 이 압력은 젊은 작가의 신작·대형 설치·컬래버레이션을 즉시성의 언어로 밀어 올리고, 사진·판화·오브제 같은 휴대·설치가 쉬운 포맷을 생활로 빠르게 옮긴다. 미국 내 운송·보험·세일즈택스..

카테고리 없음 2025.09.09

런던, 뉴욕 - 도시가 만드는 기준선과 속도

비 내린 아침, 런던 메이페어의 조용한 골목을 걷다가 유리창 너머로 검은 장갑을 낀 설치 팀이 마지막 수평을 맞추는 모습을 본다. 바깥은 축축하지만, 안은 건조하고 단단하다. 벽 텍스트에는 큐레이터의 문장이 다섯 줄 넘게 이어지고, 쇼카드는 종이 질감부터 진지하다. 런던의 전시는 문헌과 제도가 의사결정을 이끈다. 테이트·서펜타인·바비칸 같은 기관의 어휘가 상업 갤러리의 벽에 자연스럽게 박히고, 프리즈 런던/프리즈 마스터스 기간엔 메이페어-세인트제임스-피츠로비아-버먼지에 이르는 클러스터가 하나의 거대한 각주처럼 작동한다. 바로 옆 블록에서는 소더비·크리스티·필립스의 미리 보기 동선이 갤러리 언어와 맞물린다. 런던이 다른 도시와 다른 점은, 전시장에서 카탈로그까지 이어지는 텍스트의 인장이 거래를 미묘하게 이..

카테고리 없음 2025.09.08

나의 취향을 한 줄로 - “나는 ○○한 작업을 좋아한다.” 선언문 만들기

일요일 오후, 미술관 로비의 긴 벤치에 앉아 노트를 펼친다. 오늘은 많이 보지 않기로 했다. 대신 하나의 문장을 만들기로 한다. “나는 ○○한 작업을 좋아한다.” 빈칸을 오래 바라본다. 오전에 본 전시를 거꾸로 되감는다. 한 벽을 채운 대형 회화는 좋았지만 마음이 오래 머무르진 않았다. 오히려 복도 끝, 유리 안쪽에 있던 작은 드로잉 앞에서 발이 멈췄다. 종이의 섬유가 사선으로 빛을 먹고, 여백이 선을 부드럽게 감싸던 그 순간. 노트에 첫 단어가 적힌다. “나는 여백이 넉넉하고 선의 호흡이 느린 작업을 좋아한다.” 문장을 더듬더듬 고쳐 본다. “나는 종이의 섬유가 살아 있고 여백이 넉넉한, 작은 드로잉을 좋아한다.” 단정한 문장 하나가 이상할 만큼 마음을 가볍게 만든다. 이 문장만 있으면 오늘 이후의 선..

카테고리 없음 2025.08.30

예산 100만 원으로 한 달 즐기기 - 만족을 극대화하는 법

월초의 첫 토요일, 메모앱 첫 줄에 숫자 하나를 적는다. “이번 달 미술 예산: 1,000,000원.” 카드 명세서와는 별개의, 기쁨을 관리하는 통장 같은 숫자다. 계획은 단순하다. 전시 몇 개를 제대로 보고, 작가 노트를 한두 권 모으고, 소형 작업 하나를 고르고, 남은 돈으로 프레이밍을 깔끔히 마무리한다. 지난 시즌의 실패 - 티켓을 무심코 쌓다가 소형 작품을 놓친 일, 프레임 비용을 간과해 총액이 틀어진 일 - 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오늘은 총액 예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항목을 나누지 않고, 한 달 동안 미술에 쓰는 모든 지출을 한 바스켓에 넣어 사후 배분하는 방식이다.지갑을 열기 전, 벽 앞에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번 달의 목표는 돈을 쓰는 게 아니라, 문장을 남기는 것이다. 왜 이 전시였는..

카테고리 없음 2025.08.29

아트페어 하루 공략법 - 부스 동선·딜러 대화·후속 메일까지 3시간 루틴

입구에서 손목밴드를 받는 순간부터 공기가 바뀐다. 음악과 사람의 웅성거림, 크레이트에서 막 나온 나무 냄새, 바퀴 소리와 라벨 스티커가 슥슥 떼어지는 마찰음이 한꺼번에 밀려든다. 지도를 펼치면 알파벳과 숫자가 뒤섞인 격자가 눈을 먼저 흔들고, 그 격자 속에 세계 각지의 갤러리 명단이 빼곡하다. 처음 방문하는 관람객은 무심코 가장 큰 통로로 빨려 들어가지만, 노련한 애호가는 스스로의 속도를 먼저 정한다. 입장하자마자 직접 종이 지도에 별표를 찍고, 휴대폰 메모에 오늘의 목표를 딱 세 줄로 줄인다. “대표 시리즈의 표준 사양을 한 작가에서 확인할 것. 사진·판화 부스에서 에디션 구조와 가격 계단을 비교할 것. 오후 3시 이전에 1차 후보를 5점으로 압축할 것.” 이 세 줄이 발걸음의 리듬을 만든다.부스 앞에..

카테고리 없음 2025.08.26

프리뷰 체크리스트 - 뒷면 라벨부터 컨디션, 보증·세금 기호까지 20분 점검 루틴

프리뷰룸에 들어서면 공기가 다릅니다. 전시장보다 살짝 밝고, 작품 사이의 간격은 좁으며, 벽면 캡션 아래에는 작은 스티커나 기호가 더 붙어 있습니다. 직원은 컨디션 리포트를 준비해 두었는지 묻고, 당신은 카탈로그에서 표시해 둔 로트 번호를 속으로 한 번 더 되뇌입니다. 첫 대면은 늘 표면에서 시작합니다. 정면에서 한 걸음, 그리고 비스듬한 각도로 또 한 걸음. 광택이 도는 바니시가 균일한지, 색면의 미세한 요철이 조명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종이 가장자리에 얇은 누런 띠가 있지는 않은지 눈이 적응하자마자 점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잠깐 숨을 고르고 작품 뒷면을 보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라벨, 운송 스티커, 연필 메모, 주조소 마크, 스튜디오 스탬프-이 몇 가지 단서가 한 장의 작품을 시간 속에 고정시키..

카테고리 없음 2025.08.26

처음 경매 참여하기(모의) - 타이머·호가·상한선의 감각을 몸에 익히기

저녁 9시가 조금 지나, 온라인 세일 페이지를 엽니다. 화면 오른쪽 상단의 카운트다운 타이머는 3분을 가리키고, 그 아래에는 현재 호가와 다음 호가 단위가 깜빡입니다. 누군가가 한 번 더 올리자 남은 시간이 다시 2분 59초로 리셋되고, 조용했던 화면이 갑자기 살아납니다. 경매는 끝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누군가의 손짓 하나로 끝을 미루는 장치입니다. 초심자에게 가장 무서운 순간은 이 연장과 단위가 만들어 내는 리듬을 모른 채, “지금 아니면 못 산다”는 압박에 휩쓸릴 때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실제 돈을 쓰지 않는 모의 참여로 시작합니다. 카탈로그에서 마음에 드는 로트 세 개를 고르고, 각 로트에 총액 기준 상한선을 적습니다. 그리고 타이머가 줄어드는 화면을 보면서, 프리미엄과 세금, 운송까지 더한 최종 지..

카테고리 없음 2025.08.25

경매 카탈로그 읽는 법 - 한 장에서 가격·리스크·기회를 잡아내기

프리뷰룸 문을 열고 들어가 카탈로그를 한 권 집어 들면, 얇은 광택지의 차가운 촉감이 먼저 손끝을 깨웁니다. 표지를 넘기는 순간, 로트 번호가 큼직하게 박힌 제목행이 시선을 끌고, 그 아래 단정한 활자로 작가·작품명·연도가 줄을 맞춥니다. 사진 한 컷이 한 페이지를 장악하고, 반대편에는 재료와 크기, 전시·문헌 기록, 프로버넌스, 컨디션 설명이 잔잔하게 이어집니다. 언뜻 화보집 같지만, 사실 이 페이지는 가격과 위험, 그리고 기회가 교차하는 지도와 같습니다.경험 많은 애호가들은 이 한 장을 넘길 때, 눈의 순서를 미리 정해 둡니다. 제목을 스치듯 확인하고, 곧장 재료·크기로 내려가 자신의 공간·운송 현실과 대조합니다. 이어서 프로버넌스를 읽는 동안에는 체인(소유 이력)의 끊김을 찾고, 바로 아래 전시·문..

카테고리 없음 2025.08.25

주말 갤러리 산책코스 짜기 - 90분 코스, 대화, 재방문까지 한 호흡으로

토요일 아침 10시, 집을 나서며 지도를 반으로 접어 주머니에 넣는다. 오늘은 코스를 세 개로 나눴다. 삼청-사간-북촌에서 몸을 풀고, 점심 뒤 한남-이태원에서 대화를 늘리고, 해 질 무렵 성수-서울숲에서 마무리하며 재방문으로 결론을 정리하는 식. 첫 공간 문을 여니 차가운 공기가 볼을 스친다. 벽은 조용하지만 표면은 이미 말이 많다. 휴대폰을 꺼내지 않고 3분간 가만히 선다. 전면에서 한 번 숨을 들이마시고, 45도에서 표면의 빛을 확인하고,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서명과 연도를 읽는다. 그제야 메모앱을 연다. “△△작가, 2023, 80×60cm, 아크릴/캔버스 - 표준 사양 후보.” 프레스 릴리스를 하나 챙겨 주머니에 넣고, 다음 공간까지 7분을 걸어가며 방금 본 장면을 마음속에서 다시 걸어 본다. ..

카테고리 없음 2025.08.25

한국 단색화 - 반복과 호흡, 재료의 시간으로 읽는 법

낮은 겨울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전시장, 멀리서 보면 한 톤의 색이 벽을 고요하게 채운다. 가까이 다가서자 표면은 전혀 다르다. 연필이 종이를 수천 번 긁어 지나간 미세한 골이 빛을 먹고, 마대의 거친 올 사이로 물감이 뒤에서 밀려 나와 작은 봉우리를 만든다. 또 다른 벽에서는 칼로 올을 벗겨 낸 한지의 섬유가 숨을 쉬듯 부풀고, 붉은 갈색과 짙은 청색이 문처럼 만나 중앙의 여백을 열어 준다. 한국 단색화는 화면을 칠하는 회화라기보다 시간을 쌓는 작업에 가깝다. 1970년대 전후, 한국의 작가들은 서구 형식의 복제나 속도가 아닌, 반복과 절제, 물성과 호흡의 리듬으로 자신들의 길을 찾아냈다. 박서보의 ‘묘법(Ecriture)’은 연필과 한지의 마찰을, 하종현의 ‘접합(Conjunction)’은 캔버스..

카테고리 없음 202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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