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겨울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전시장, 멀리서 보면 한 톤의 색이 벽을 고요하게 채운다. 가까이 다가서자 표면은 전혀 다르다. 연필이 종이를 수천 번 긁어 지나간 미세한 골이 빛을 먹고, 마대의 거친 올 사이로 물감이 뒤에서 밀려 나와 작은 봉우리를 만든다.
또 다른 벽에서는 칼로 올을 벗겨 낸 한지의 섬유가 숨을 쉬듯 부풀고, 붉은 갈색과 짙은 청색이 문처럼 만나 중앙의 여백을 열어 준다. 한국 단색화는 화면을 칠하는 회화라기보다 시간을 쌓는 작업에 가깝다. 1970년대 전후, 한국의 작가들은 서구 형식의 복제나 속도가 아닌, 반복과 절제, 물성과 호흡의 리듬으로 자신들의 길을 찾아냈다.
박서보의 ‘묘법(Ecriture)’은 연필과 한지의 마찰을, 하종현의 ‘접합(Conjunction)’은 캔버스 뒤에서 물감을 밀어 올리는 역류의 제스처를, 정상화는 겹겹이 칠한 물감을 굳힌 뒤 격자처럼 긁어내는 반복을, 권영우는 한지를 찢고 뚫어 물성 자체를 드러내는 행위를, 윤형근은 번트엄버와 울트라마린의 두 색만으로 시간의 문을 세웠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색의 단순함이 아니라 행위의 누적이다. 그래서 단색화 앞에서는 늘 한 걸음 더 가까이 가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듣듯이 본다. 눈이 표면을 읽는 순간, 각자의 작업 언어가 명확해진다.

단색화 : 재료·행위·시기
단색화는 재료·행위·호흡을 읽어야 가격이 보인다.
첫째, 재료. 한지, 마대, 린넨, 유화·아크릴, 목탄·연필 등은 단지 도구가 아니라 작업 언어다. 같은 작가라도 한지 위의 묘법과 캔버스 위의 유화는 가격과 보존이 달라진다. 한지는 습도·빛에 민감하므로 프레이밍(유브이 아크릴·아카이벌 매트)이 총액의 핵심이고, 마대 작업은 올의 마찰·돌기가 보존 포인트다.
둘째, 행위의 규칙. 박서보의 연필선 간격, 하종현의 배면압출 흔적, 정상화의 균일한 격자/균열, 권영우의 천공 패턴, 윤형근의 수직 ‘문’의 폭·겹침이 규칙이 안정적으로 반복되는 시기와 사양이 대체로 표준 사양이자 유동성이 높은 구간이 된다.
셋째, 호흡(시기) 1970~80년대 비교적 초기/전성기 작업은 문헌·기관 신호가 탄탄해 상단을 형성하고, 1990년대 이후의 지속·회고기의 작업은 크기·완성도에 따라 중단을 이룬다. 다만 작가마다 전환기 시그니처가 다르므로, 한 작가 안에서 연도-시리즈-재료를 같은 표로 정리해야 체감 가격이 잡힌다.
가격 기준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표준 사양(중형·대표색·대표공정) + 문헌/기관 신호 + 보존·프레임 총액”. 같은 100호라도 표면의 밀도(행위의 누적), 문헌(도록 본문/기관 전시), 프로버넌스(초기 갤러리·초기 컬렉터 체인), 보존(한지/마대의 상태)에서 가격이 갈린다. 입문자는 종이 작업/소형 캔버스에서 시작해 작가의 규칙을 눈으로 훈련하기 좋고, 중형 이상 캔버스는 공간·운송·보험까지 포함한 총액이 현실적으로 감당되는지 먼저 계산해야 한다.
단색화 판별법
문을 열고 들어서면 먼저 멀리서 한 번, 가까이서 두 번 본다.
박서보 앞에서는 화면 전체의 리듬을 훑은 뒤, 연필선의 눌림·유격·한지의 들뜸을 45도 측광에서 확인한다. 연필선이 일정하게 ‘숨’을 하듯 이어지는지, 중간에 멈춤·재개 흔적이 어떻게 남는지 볼 것.
하종현의 마대 앞에선 표면을 손끝으로 만지고 싶어지지만 눈으로만 읽는다. 뒤에서 밀어 올린 물감이 앞면에서 어떻게 굳으며 갈라졌는지, 마대 올의 손상·마찰이 어디에 집중되는지.
정상화는 표면의 ‘걷어냄’이 규칙적 균열을 만들며 화면 전체에 호흡을 통일하는지, 균열 사이로 드러난 밑층의 색이 균형을 이루는지. 권영우는 한지의 절단·천공이 이미지가 아니라 행위 자체로 보이는지, 가장자리의 찢김이 보존 문제인지 작업의 일부인지 직원과 꼭 확인한다.
윤형근 앞에서는 두 색의 경계가 스며드는 시간, 수직의 ‘문’ 사이에 놓인 여백이 균형을 이루는지 본다. 가장자리의 번짐과 중앙의 탁월한 침묵이 만나는 지점이 이 작업의 심장이다.
다음은 라벨과 문서다. 작가·제목·연도·재료·크기와 함께, 시리즈명이 명시되어 있으면 그 이름을 폴더의 파일명에 꼭 포함한다(예: Ecriture(描法), Conjunction, Relatum, Untitled(門) 등). 프레스 릴리스·도록 페이지가 있다면 본문/대형 도판 여부를 표시한다.
단색화는 문헌·기관 신호가 가격을 뒷받침하는 경우가 많아, 문서의 선명도가 곧 유동성의 언어가 된다. 프로버넌스는 “초기 판매처–중간 소장–현재”의 끊김 여부를 보되, 국내외 기관 대여 이력·회고전 참여 여부도 함께 확인하면 좋다.
이제 총액을 계산한다. 한지/종이 작품은 프레임이 경험의 절반이다. UV 아크릴·아카이벌 매트·밀폐식 백보드·스페이서 포함 비용을 반드시 견적에 넣는다. 마대·두꺼운 재질의 캔버스는 운송·보험·문전 설치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작품가 X + 프레임/글레이징 + 운송/보험 + (세금·서류) = 총액 Y”를 두 줄로 적고, Y를 기준으로 워크어웨이 넘버(총액 상한)를 정한다.
마지막은 집의 호흡과 맞추기다. 단색화는 빛을 먹는 회화다. 남서향의 강한 직사광이 들어오는 벽은 한지·종이에 불리하다.
윤형근의 짙은 문은 낮은 조도에서도 울림을 유지하지만, 박서보의 세밀한 골은 정면광보다 사선광에서 살아난다. 하종현·정상화처럼 표면 돌기가 있는 작업은 관람 동선과의 거리, 어린 자녀·반려동물의 접촉 가능성을 고려한 높이가 필요하다.
벽에 올리기 전, 종이테이프로 가상의 테두리를 잡아 간격을 시뮬레이션하고, 미술관에서 본 설치 간격(예: 120×100 두 점 간 40cm)을 그대로 옮겨 본다. 미술관의 질서를 집의 질서로 번역하는 일, 그것이 단색화를 오래 보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작가별로 한 줄 정리하면 이렇다.
박서보: 연필과 한지의 호흡의 기록 - 선의 밀도·유격이 생명. 하종현: 배면압출의 역행 - 마대 올과 물감의 마찰이 드러난다. 정상화: 칠하고 굳히고 긁어내는 반복의 규칙 - 균열의 균형이 핵심. 권영우: 한지를 찢고 뚫는 물성의 드로잉 - 보존과 행위의 경계를 묻는다. 윤형근: 두 색의 문 - 여백과 중첩의 비율이 울림을 만든다. 여기에 김기린(김귀린, 김길린으로도 표기)의 평면적 색면, 이동엽의 호흡과 선, 이우환의 절제된 선·점의 질서까지 같은 표에 놓아 보면, ‘단색’이라는 말이 결코 단조가 아님을 체감하게 된다.
주요 용어 및 추천 미션
주요 용어
- 묘법(Ecriture): 박서보가 구축한 연필·한지의 반복적 선 긋기. 화면을 ‘채우는’ 행위보다 호흡을 기록하는 데 초점이 있다.
- 배면압출(Back-pressure/Back-painting): 하종현이 즐겨 쓴 방식. 캔버스 뒤에서 물감을 밀어 앞면의 마대 올 사이로 솟게 하는 역행적 제스처. 표면 돌기·마찰이 보존 포인트다.
- 한지의 물성(Hanji): 섬유 길이가 길고 흡수성이 커서 반복 행위를 품는다. 대신 습도·빛에 민감하므로 UV 아크릴·아카이벌 매트·밀폐 프레이밍이 필수다.
추천 미션
- 같은 작가의 1970–80년대 vs 2000년대 이후 작업을 크기·재료·문헌 신호로 수평 비교해 보세요. ‘전성기–지속기’의 가격 언어가 또렷해집니다.
- 라벨·프레스 릴리스의 시리즈명을 파일명에 포함하고, 도록 본문/대형 도판 페이지를 교차 표기하세요. 문서의 선명도가 유동성을 만듭니다.
- 한지·마대 작품은 프레이밍/운송 견적을 작품가와 동시에 받으세요. 단색화의 만족은 총액에서 결정됩니다.
다음 회차 예고: “팝아트 - 대중 이미지와 가격의 민주화: 실크스크린·에디션·브랜딩의 언어로 읽는 법”. 팝 이미지의 반복과 에디션 구조, 브랜드 협업이 총액과 유동성에 미치는 영향을 생활의 문장으로 정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