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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 4

나의 취향을 한 줄로 - “나는 ○○한 작업을 좋아한다.” 선언문 만들기

일요일 오후, 미술관 로비의 긴 벤치에 앉아 노트를 펼친다. 오늘은 많이 보지 않기로 했다. 대신 하나의 문장을 만들기로 한다. “나는 ○○한 작업을 좋아한다.” 빈칸을 오래 바라본다. 오전에 본 전시를 거꾸로 되감는다. 한 벽을 채운 대형 회화는 좋았지만 마음이 오래 머무르진 않았다. 오히려 복도 끝, 유리 안쪽에 있던 작은 드로잉 앞에서 발이 멈췄다. 종이의 섬유가 사선으로 빛을 먹고, 여백이 선을 부드럽게 감싸던 그 순간. 노트에 첫 단어가 적힌다. “나는 여백이 넉넉하고 선의 호흡이 느린 작업을 좋아한다.” 문장을 더듬더듬 고쳐 본다. “나는 종이의 섬유가 살아 있고 여백이 넉넉한, 작은 드로잉을 좋아한다.” 단정한 문장 하나가 이상할 만큼 마음을 가볍게 만든다. 이 문장만 있으면 오늘 이후의 선..

카테고리 없음 2025.08.30

주말 갤러리 산책코스 짜기 - 90분 코스, 대화, 재방문까지 한 호흡으로

토요일 아침 10시, 집을 나서며 지도를 반으로 접어 주머니에 넣는다. 오늘은 코스를 세 개로 나눴다. 삼청-사간-북촌에서 몸을 풀고, 점심 뒤 한남-이태원에서 대화를 늘리고, 해 질 무렵 성수-서울숲에서 마무리하며 재방문으로 결론을 정리하는 식. 첫 공간 문을 여니 차가운 공기가 볼을 스친다. 벽은 조용하지만 표면은 이미 말이 많다. 휴대폰을 꺼내지 않고 3분간 가만히 선다. 전면에서 한 번 숨을 들이마시고, 45도에서 표면의 빛을 확인하고,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서명과 연도를 읽는다. 그제야 메모앱을 연다. “△△작가, 2023, 80×60cm, 아크릴/캔버스 - 표준 사양 후보.” 프레스 릴리스를 하나 챙겨 주머니에 넣고, 다음 공간까지 7분을 걸어가며 방금 본 장면을 마음속에서 다시 걸어 본다. ..

카테고리 없음 2025.08.25

사진·뉴미디어 - 빛과 파일을 생활로 들이는 법

밤 9시 반, 집 안의 등이 하나둘 꺼지고 거실 벽만 은은하게 남는다. 액자 속 사진은 낮보다 지금이 더 깊다. 종이 표면의 무광 결이 빛을 부드럽게 받아들이고, 프레임 안쪽의 얇은 그림자가 이미지를 살짝 떠오르게 만든다. 옆 테이블엔 작은 미디어 플레이어가 놓여 있고, 화면에는 12분짜리 영상이 조용히 순환한다. 파도에 묻힌 도시의 소음, 화면이 어둡게 꺼졌다 켜질 때의 아주 미세한 팬 소리, 한밤의 집은 작품과 가장 가까운 시청실이 된다. 낮엔 갤러리에서 ‘좋다’고 느끼던 감정이, 밤엔 생활의 리듬으로 들어온다. 사진·뉴미디어 작품을 들인다는 건 결국 빛과 파일을 다루는 일이다. 종이는 빛과 시간에 민감하고, 영상은 코드와 장비의 언어로 생명을 이어 간다. 오늘은 애호가의 눈높이에서, 이 두 세계를 ..

카테고리 없음 2025.08.25

미술품 가격은 어디서 만들어질까? 갤러리와 경매의 역할

토요일 오후, 전시장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공기가 두 번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갤러리 부스에서는 조용한 대화가 길게 이어집니다. 담당자는 작가가 어떤 시리즈를 준비해 왔는지, 최근 전시가 어디에서 열렸는지, 작품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는지를 차분히 설명합니다. 작품 옆 라벨에는 가격이 적혀 있지 않거나, 요청 시에만 조용히 알려주기도 합니다. 이곳의 리듬은 “관계”와 “시간”에 가깝습니다. 작품이 팔리는 속도는 갤러리가 정한 배분 원칙과 대기자 순서에 맞춰 천천히 움직이고, 다음 전시, 다음 신작까지 바라보는 긴 호흡이 공기에 스며 있습니다. 반면 경매 하우스 프리뷰룸에 들어서는 순간, 같은 크기의 작품도 다른 표정으로 보입니다. 라벨에는 추정가 범위가 기재되고, 며칠 뒤 정해진 시간에 공개..

카테고리 없음 202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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