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에서 손목밴드를 받는 순간부터 공기가 바뀐다. 음악과 사람의 웅성거림, 크레이트에서 막 나온 나무 냄새, 바퀴 소리와 라벨 스티커가 슥슥 떼어지는 마찰음이 한꺼번에 밀려든다. 지도를 펼치면 알파벳과 숫자가 뒤섞인 격자가 눈을 먼저 흔들고, 그 격자 속에 세계 각지의 갤러리 명단이 빼곡하다. 처음 방문하는 관람객은 무심코 가장 큰 통로로 빨려 들어가지만, 노련한 애호가는 스스로의 속도를 먼저 정한다. 입장하자마자 직접 종이 지도에 별표를 찍고, 휴대폰 메모에 오늘의 목표를 딱 세 줄로 줄인다. “대표 시리즈의 표준 사양을 한 작가에서 확인할 것. 사진·판화 부스에서 에디션 구조와 가격 계단을 비교할 것. 오후 3시 이전에 1차 후보를 5점으로 압축할 것.” 이 세 줄이 발걸음의 리듬을 만든다.부스 앞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