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10시, 집을 나서며 지도를 반으로 접어 주머니에 넣는다. 오늘은 코스를 세 개로 나눴다. 삼청-사간-북촌에서 몸을 풀고, 점심 뒤 한남-이태원에서 대화를 늘리고, 해 질 무렵 성수-서울숲에서 마무리하며 재방문으로 결론을 정리하는 식. 첫 공간 문을 여니 차가운 공기가 볼을 스친다. 벽은 조용하지만 표면은 이미 말이 많다. 휴대폰을 꺼내지 않고 3분간 가만히 선다. 전면에서 한 번 숨을 들이마시고, 45도에서 표면의 빛을 확인하고,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서명과 연도를 읽는다. 그제야 메모앱을 연다. “△△작가, 2023, 80×60cm, 아크릴/캔버스 - 표준 사양 후보.” 프레스 릴리스를 하나 챙겨 주머니에 넣고, 다음 공간까지 7분을 걸어가며 방금 본 장면을 마음속에서 다시 걸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