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스튜디오에서 스케치북을 넘겨 보던 순간을 떠올려봅니다. 연필이 멈칫하다가 다시 달리는 흔적, 지워졌다가 남은 회색의 잔상, 종이의 결에 걸린 숯가루가 작은 별처럼 박혀 있습니다. 캔버스 앞에서 느꼈던 장엄함과는 다른 종류의 울림이지요. 드로잉은 생각이 태어나는 처음 단계에 가장 가깝습니다. 주저 없이 긋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우고, 다시 올리면서 작가의 손과 호흡이 거의 실시간으로 종이에 저장됩니다. 그래서 작은 드로잉 한 장이 작가 세계의 뼈대를 더 또렷하게 보여 줄 때가 있습니다. 벽에 걸어두면 공간에 과장되지 않은 리듬이 생기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재미가 깊어집니다. “처음 컬렉팅을 어디서 시작할까?”라는 질문에 드로잉이 좋은 답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격 부담은 상대적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