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 반, 집 안의 등이 하나둘 꺼지고 거실 벽만 은은하게 남는다. 액자 속 사진은 낮보다 지금이 더 깊다. 종이 표면의 무광 결이 빛을 부드럽게 받아들이고, 프레임 안쪽의 얇은 그림자가 이미지를 살짝 떠오르게 만든다. 옆 테이블엔 작은 미디어 플레이어가 놓여 있고, 화면에는 12분짜리 영상이 조용히 순환한다. 파도에 묻힌 도시의 소음, 화면이 어둡게 꺼졌다 켜질 때의 아주 미세한 팬 소리, 한밤의 집은 작품과 가장 가까운 시청실이 된다. 낮엔 갤러리에서 ‘좋다’고 느끼던 감정이, 밤엔 생활의 리듬으로 들어온다. 사진·뉴미디어 작품을 들인다는 건 결국 빛과 파일을 다루는 일이다. 종이는 빛과 시간에 민감하고, 영상은 코드와 장비의 언어로 생명을 이어 간다. 오늘은 애호가의 눈높이에서, 이 두 세계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