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과 확장: 소호의 작은 공간에서 다거점 체제로
David Zwirner(데이비드 즈워너)는 1993년 뉴욕 소호에서 첫발을 뗐다. 그린 스트리트 43번지 1층이 출발점이었고, 첫 전시는 Franz West 개인전이었다. 초창기부터 “도전적인 동시대 작업을 꾸준히 소개한다”는 목표를 내세웠고, 프로그램의 밀도를 유지하기 위해 전시 간격과 동선을 세심하게 관리했다.
2000년대 초반 첼시로 거점을 옮기면서 대형 작업을 안정적으로 다루는 기본 체력이 마련되었고, 런던과 홍콩, 파리로 확장하며 주요 허브 도시에 상설 공간을 확보했다. 2023년에는 로스앤젤레스 멜로즈 힐에 새 전시장을 열어 서부권 프로그램을 본격 가동했다. 확장 속도 자체가 화제가 되기보다는, 어느 도시에 가도 비슷한 수준의 전시 품질과 운영 리듬을 보장한다는 점이 브랜드의 신뢰를 만들었다.
거버넌스는 오너 중심 구조이되, 도시별 디렉터가 자율성을 갖고 운영하는 분산형에 가깝다. 뉴욕 트라이베카의 52 Walker는 Ebony L. Haynes가 책임자로서 큐레이션 방향을 주도한다. 전시를 급하게 돌리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보여 준다. 같은 David Zwirner 소속이지만, 운영 철학은 미술관에 가까운 실험 성격을 지닌다.
본점이 상업 갤러리의 리듬을 유지하는 동안, 이 공간은 전시 기간과 리서치 강도를 높여 프로그램의 또 다른 축을 맡는다. 도시별로 역할을 달리 주는 방식 덕분에, 한 브랜드 안에서 서로 다른 속도와 결을 병행할 수 있다.
운영 성향은 세 갈래가 함께 움직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첫째, 공간이다. 높은 층고와 긴 벽면을 살려 중·대형 회화와 설치를 무리 없이 걸고, 반사와 그림자를 조절해 대형 사진·영상도 안정적으로 보여 준다.
둘째, 디지털이다. 2017년부터 Online Viewing Room을 상시 채널로 준비했고, 2020년에는 동료 갤러리를 초대해 판매를 돕는 Platform을 가동했다. 온라인을 단순 홍보 수단이 아니라 병행 채널로 취급하는 시각이 분명하다.
셋째, 출판이다. David Zwirner Books가 단행본과 모노그래프를 꾸준히 낸다. 전시장에서 본 이미지를 책으로 다시 읽게 만들고, 온라인과도 연결 고리를 만든다.
선호하는 작품 스타일은 전후부터 동시대에 이르는 회화와 조각 전반을 포괄하지만, 특히 화면을 크게 쓰는 회화, 아이디어와 규칙이 중심이 되는 텍스트·시간 기반 작업, 정교한 설치, 대형 사진·영상에 강하다.
Yayoi Kusama처럼 회화와 설치를 동시에 요구하는 대형 프로젝트, On Kawara처럼 절제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시간과 기록을 다루는 작업, Wolfgang Tillmans처럼 사진과 전시 디자인이 긴밀한 작가들을 안정적으로 지원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작가와 전시로 읽는 운영 역량: 공간·디지털·출판이 맞물릴 때
뉴욕 첼시는 여전히 기준을 잡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대형 캔버스와 조각, 사진·영상 설치가 섞인 전시가 잦다. 벽 길이와 동선을 여유 있게 쓰고, 작품 사이 간격을 넉넉히 두기 때문에 한 작가의 서로 다른 시기 작업을 나란히 보여 주거나, 한 시리즈의 핵심 사이즈를 집중 배치해 흐름을 잡기가 좋다.
관람자가 포인트를 놓치지 않도록 조도와 반사를 세밀하게 조정하고, 작품 앞에서 충분히 머무를 시간을 보장한다. 같은 작가가 다른 도시에서 전시를 이어 갈 때도 이 세팅이 기준이 되어, 도시가 달라져도 작품이 전달하는 인상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아이디어 중심 작업의 대표 사례로는 뉴욕에서 진행된 On Kawara의 ‘One Million Years’ 낭독을 들 수 있다. 텍스트와 시간의 흐름을 전시의 중심으로 두는 작업이라, 공간 배치와 관람 동선을 차분하게 정리하는 일이 핵심이었다.
낭독과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환경을 구축해, 관객이 작업의 구조를 자연스럽게 따라가도록 했다. 전시 자체를 과장하지 않고, 텍스트가 차분히 쌓이도록 돕는 세팅이어서, 작업이 주려는 에너지가 무리 없이 전달됐다.
회화 중심 전개는 유럽 거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런던에서는 화면의 여백과 색면을 섬세하게 다루는 동시대 회화 전시가 꾸준히 열리고, 파리에서는 구조가 단단한 화면을 긴 벽에 반복 배치해 리듬을 만든다.
이런 장면은 대형 캔버스의 벽 배치, 조도, 관람 거리, 반사 제어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때 가능하다. 어느 벽에서 시리즈가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어떤 크기가 중심인지가 명확해 관람 흐름이 자연스럽다. 한 작가의 핵심 사이즈와 포맷이 눈에 들어오면, 이후 다른 도시의 발표에서도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 멜로즈 힐은 확장 전략을 보여 주는 사례다. 개관 당시 Njideka Akunyili Crosby와 Stan Douglas가 각각 회화와 사진·영상으로 공간을 시험했다. 자연광과 동선을 중시한 전시장 구성은 Selldorf Architects가 담당했고, 오픈 라인업은 지역 문맥과 국제 프로그램을 동시에 보여 주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이듬해 같은 블록에 신관을 더해 규모를 키웠고, 30주년 프로그램을 통해 한 동네에서 여러 공간을 연속 운용하는 방식을 선보였다. 도시와의 접점을 넓히는 동시에, 전시를 보는 기준을 새로운 관객층에게 빠르게 공유하는 효과가 있었다.
Yayoi Kusama 개인전은 브랜드의 설치·운영 능력을 가늠하기에 좋다. 뉴욕에서 진행된 개인전에서는 Infinity Mirror Room 설치와 대형 회화가 함께 나왔다. 대기 동선, 안전, 조명·음향 조정 같은 운영 요소를 잘 맞춰야 하는 작업이지만, 공간과 팀의 경험치가 높아 전시가 깔끔하게 돌아갔다. 관람자는 불필요한 방해 없이 핵심을 보게 되고, 온라인에는 설치 이미지와 작품 정보가 정리되어 사전 정보와 판매 접점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52 Walker를 보자. 이 공간은 빠른 교체보다는 긴 전시 기간을 택한다. 리서치가 많은 프로젝트를 차분히 붙들고, 텍스트와 작품을 함께 읽게 만드는 편이다. 전시를 급하게 돌리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보여 준다.
같은 David Zwirner 소속이지만, 운영 철학은 미술관에 가까운 실험 성격을 지닌다. 본점·지점·디지털이 각각 역할을 나눠 가질 때, 같은 브랜드 안에서도 다양한 리듬이 공존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공간이다.
세일즈와 페어 운영: 기준을 먼저 정하고, 온오프라인 병행
세일즈의 원칙은 간단하다. 기준을 먼저 정하고, 온오프라인 병행. 새 연작을 공개할 때 가장 수요가 모이는 크기와 재료를 앞세워 시리즈의 중심을 잡고, 과거 작업을 다룰 때는 시기와 규격이 분명한 것만 고른다. 가격을 이야기할 때도 숫자만 말하지 않는다. 연도, 사이즈, 재료, 전시 맥락을 함께 설명해 관람자가 이미 전시장에서 확인한 정보와 연결되도록 한다.
작품 앞에서 느낀 조건이 가격 설명의 근거로 곧장 이어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구매 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가 줄어든다.
아트페어에서는 이 원칙이 그대로 부스 배치에 적용된다.
서사를 책임질 대표작을 중앙에 두고, 접근성이 높은 소·중형 작품을 주변에 배치한다. 관람 동선은 직관적으로 설계하고, 벽면과 조도를 이용해 중심과 변주가 한눈에 읽히게 만든다. 같은 도시에 상설 전시를 함께 열거나 Online Viewing Room을 동시에 운영해, 현장에서 본 경험이 상담과 거래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한다.
팬데믹 이후에도 Online Viewing Room은 상시 채널로 남아 있고, 필요할 때는 Platform 같은 프로젝트형 발표가 더해진다. 결국 부스, 도시 전시, 온라인이 한 루트로 연결되어 문의와 배정이 빠르게 오가며, 전시에서 만든 기준이 판매 단계까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이런 연동이 가능한 이유는 도시별 조직과 디렉터십의 분산에 있다.
트라이베카의 52 Walker는 큐레이션 실험과 장기 전시를, 첼시는 대형 회화와 설치의 기준점을, 로스앤젤레스는 새로운 관객과의 접점을 맡는다. 파리와 런던, 홍콩은 유럽·아시아의 네트워크와 연결되며, Online Viewing Room과 David Zwirner Books는 디지털·출판 차원에서 같은 이야기를 다른 형식으로 이어 준다.
한 브랜드가 여러 도시와 채널에서 같은 기준을 공유하려면, 전시 설계와 커뮤니케이션의 어휘가 통일되어야 한다. David Zwirner의 강점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한 줄로 정리하면, David Zwirner(데이비드 즈워너)는 공간·디지털·출판을 함께 굴리며 도시마다 같은 기준으로 프로그램을 이어 가는 갤러리다. 다음 회차에서는 Pace(페이스)의 뉴미디어 및 테크와의 협업 전략을 살펴보겠다.